집에서 샤워를 하던 나는 갑자기 밖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
급히 나가 보니 낯선 남자 한 명이 서 있었고, 가족들은 모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 남자는 나를 보자마자 도망쳤고, 나 역시 곧바로 집을 빠져나왔다.
왜 그랬을까?
가족들을 살해한 범인은 집에 침입한 낯선 남자가 아니라 샤워를 하고 있던 화자 자신이었다. 그는 가족을 먼저 살해한 뒤 몸에 묻은 피와 흔적을 씻기 위해 욕실에서 샤워하고 있었다. 그 사이 집에 물건을 훔치려던 강도가 우연히 침입했고, 거실과 방에 쓰러진 희생자들을 발견하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듣고 욕실에서 나온 화자와 마주친 강도는, 눈앞의 사람이 가족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자신까지 살해될까 두려워 달아났다. 화자 역시 강도의 비명 때문에 이웃이나 경찰이 곧 올 수 있고 목격자까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강도를 쫓기보다는 체포되기 전에 현장을 떠나기 위해 곧바로 집 밖으로 도망친 것이다.
어두운 밤 집 안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를 듣고도 남자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담담하게 잠자리에 든 이유는 잔혹한 무관심이 아닙니다. 비명을 지른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던 앵무새였거나, 녹음된 텔레비전 방송 소리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