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을 고민하던 한 여학생 앞에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가 소원을 묻자, 여학생은 원하는 대학교에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고민하던 그녀 앞에 악마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대기업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고, 이번에도 바람은 이루어졌다.
몇 년 뒤, 인생을 고민하던 그녀 앞에 악마가 세 번째로 나타나 소원을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악마는 잠시 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안타까워했다.
왜 그랬을까?
악마는 무료로 소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소원 하나마다 여학생의 감각을 대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첫 번째 만남에서 그녀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해달라고 하자 악마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대신 시각을 빼앗았고, 그녀는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대기업에 취직시켜주는 대가로 청각까지 가져가 그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얻고 싶은 삶을 얻었지만 악마가 나타날 때마다 감각을 하나씩 잃고 있었다. 몇 년 뒤 세 번째로 나타난 악마는 평소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소원을 물었지만, 그녀는 이미 악마를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어서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악마는 대답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인식할 방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더 이상 계약을 이어갈 수 없게 된 자신의 실수를 안타까워한 것이다.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거두러 왔다가 계약서의 사소한 문구 하나 때문에 영혼을 가져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간 전개는 초월적인 존재조차 구속하는 엄격한 논리 법칙에 기반합니다. 악마가 인간의 말장난이나 역설적인 조건(예: '내가 죽지 않는 한 영혼을 준다')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기지 넘치는 수평적 반전입니다.